투구: 심해의 모험가 개발후기 #2

2020년 05월 09일
참여직군 팀장 게임디자인 아트 프로그래밍
제작기간 2019년 6월 ~ 12월
플랫폼 모바일
태그 Art Project
스토어

서문

심해 2,800m. 그 곳에는 아주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모든 생명이 태어났다고 하는‘생명의 오아시스’지만 지금은 무거운 바다 깊은 곳에 빛 한 줄기 닿지 않는 어두운 마을일 뿐이다. 이런 마을에 나는 빛을 꿈꾸는 캐릭터를 풀어놓았다. 그는 헤드랜턴을 보며 빛을 동경하기 시작하고, 그런 꿈 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나는 이런 캐릭터가 만나게 될 세상들을 준비해두었다. 다양한 마을들을 지나서, 해수면까지 올라가는 것. 그것이 스토리의 전부이다. 캐릭터 컨셉은 ‘껍데기를 이고 있는 모든 생명체’로 잡았다. 주로 복족류를 채택하여 많이 사용하였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소라게, 앵무조개등 갑각류나 두족류를 채택하기도 하였다. 심해가 게임이 진행되는 배경이기 때문에 주로 바다 안의 생명체들을 다루지만, 후에는 지상에 있는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자료조사 중

심해에 대해 많은 것을 담기 위해, 우선 게임을 넘어서 그 이상으로 심해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심해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적으며 그 마저도 정확하지 못한 것들과 루머들이 섞여 나돌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서적이 필요했고 많은 심해 서적들을 참고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적들마 다 얘기가 다른 부분들이나, 사진만으로는 움직임을 알기 힘 든 부분은 유투브 영상을 참고했다. (아귀의 고화질 유영 영상은 1시간을 바라보기도 했다.)

자료조사를 넘어서 직접 공부를 하는 자세로 심해를 받아들였다. 게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필요한 지식을 사랑하는 단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게임의 한 부분이 어떤 과학적 지식에 근거하는지 생각하는 순간은 나에게 공부이자 개발과정, 그리고 취미가 되었다.

생명의 오아시스 (수심 2800m)

생명의 오아시스

생명의 오아시스는 심해 2,800m를 배경으로 한다. 2,800m 즈음에 살고 있는 비늘발고 둥을 주인공으로, 관벌레, 떡조개, 장님게, 핑퐁트리스펀지 등 다양한 생물들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게임의 특성상, 심해에서 밝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래픽 관점에서 정말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심해이기 때문에 적은 근육, 적은 움직임으로 게임 난이도 디자인은 쉬웠지만, 이들이 약해 보일 필요가 있었다(솔직히 겁나게 생기긴 했다). 게임을 지속하게 하기 위해서 아름다워야 할 필요도 있었으며, 위로 올라갈 수록 겁이 나는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두운색이 공포와 이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래픽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지만, 이를 위해 사운드의 힘을 많이 빌렸다. 밝고 따듯한 노래로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애니메이션으로는 경직된 움직임을 주어 첫 마을다운 쉬움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을 만들기까지 자료조사에만 2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생명의 오아시스 스케치 (연필)

많은 책과 영상들을 통해서 심해의 모습과 그 생물들의 살아가는 방식들을 연구해 게임 안에 그대로 살려보고자 하였다.

장님게는 평생을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우리 게임의 게도 플레이어를 인식하지는 못한다. 같은 돌 위를 뱅뱅 돌고 있을 뿐이다. 판타지적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현실의 생물을 그대로 가져다가 쓴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기존의 생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움직임으로 패턴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생명의 오아시스’는 성게를 이용하였다. 기존의 생물들은 패턴을 유지하며, 성게에게만 큰 움직임을 주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맵 특성 자체의 정적인 이미지를 한 커풀이라도 벗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몬스터 스케치 (연필)

잃어버린 도시 (수심 2400m)

잃어버린 도시

잃어버린 도시는 심해 2,400m를 배경으로 한다. 실재 열수분출구 중에서 생명체가 거의 살지 않는 곳이 존재하는데, ‘잃어버린 도시’는 그곳의 명칭이다. 거대한 열수분출공을 중심으로 꽤 넓은 공간인데, 정말 열수분출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허허벌판이다.

이 게임에서는 명칭에 맞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아래에 살고 있던 관벌레와 떡조개를 삭제, 무너져내린 도시처럼 표현하였다. 그에 맞게 NPC들 또한 이 공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을 탐구, 혹은 발굴하기 위해서 온 컨셉으로 만들었다.

잃어버린 도시 스케치 (연필)
검은 주둥이 꼼치. 몸을 말아 해파리인 척 한다

전 마을보다 400m 정도 위로 전보다 좀 더 움직임이 활발한 생명체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게임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등장했던 성게는 탈락하고, 핑퐁트리스펀지와 장님 게의 등장을 연장했다. 불을 뿜는 카디날 피쉬, 겁쟁이 검은 주둥이 꼼치가 등장하여 게임의 난이도를 올렸다. 여전히 열수분출공 근처의 마을이기 때문에 체력회복의 요소로는 열수분출공이 활용되고 있다.

몬스터 스케치 (연필)

눈의 숲 (수심 1600m)

눈의 숲

눈의 숲은 ‘바다눈’을 컨셉으로 하고 있다.

마린스노우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말 그대로 바다 안에 내리는 눈이다. 사체 부스러기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눈처럼 보이는데, 이는 아름다움 말고도 커다란 기능을 한다. 빛이 닿지 않는 심해의 풍족한 식량이 되어 주는 것이다. 특히 고래 한 마리가 죽었을 때, 그가 만들어낸 마린스노우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지속 시간이 5년이나 된다고 하니, 그 근처 생물들은 고래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꼭 스토리의 배경에 녹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의 숲을 기획 하게 되었다. 눈과 함께 연상되는 크리스마스에서 대부분의 디자인이 결정되었고, 나머지 요소들은 카페와 펠리컨발투구의 디자인에 맞췄다. 가장 디자인이 쉬웠던 공간 중에 하나다.

눈의 숲 스케치 (연필)

몬스터들은 역시, 이 수심 즈음에 사는 생명체들로 구성하였다. 전 맵과 비교해서 크게 바뀌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응해가는 타이밍에 등장하는 맵이기 때문에 전 맵의 몬스터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전체 난이도 상, 카디날피시의 출연은 플러스라고 판단했다.)

세발치처럼 플레이어를 인식하고 움직이는 몬스터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슬슬 근육이 붙는 몬스터들의 위협이 시작됨을 알리는 맵이다.

몬스터 스케치 (연필)

전구 도시 (수심 1000m)

전구 도시

심해에 가득한 빛을 한 번에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이 마을, 전구 도시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체 맵 중에서 가장 어두운 장소이다. 빛이 차오르는 바로 윗마을에 가려진 도시이기 때문에 그림자에 대한 언급과 묘사가 많고 음지와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

빛이 그림자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라이트를 많이 사용하였고, 전구가 곳곳에 잔뜩 배치되어있다. 인위적인 밝음을 빗대기에 전구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물건이었다. 깨진 전구인위적인 빛의 약함을, 초롱아귀의 위협적인 빛으로 심해에서의 빛이 얼마나 이중적인지를 보인다.

전구 도시 스케치 (연필)

이 마을에 사는 클리오네는 바다 천사라는 멋들어진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위에 있는 유각익종류(바다 나비)를 먹는 포식자다. 이 세계관에서 둘 다 지능형 생명체이기 때문에 이 행동이 비도덕적으로 비치고 캐릭터들의 대사나 표정이 살벌해짐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고래의 사체가 눈이 되어 내림과 동시에 윗마을의 주민인 바다 나비를 무자비하게 잡아먹는 종족이 사는 곳. 이 마을은 따듯한 두 마을 사이에서 어두운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배경 디자인은 시체와 식문화, 위아래 마을과의 관계에 집중된 디자인을 담고 있다. 조금 더 연관성을 주기 위하여 언급은 위 마을의 비중을 키웠고, 아래 마을과 연관된 NPC를 배치하였다.

클리오네 NPC '바다천사'들 스케치 (연필)
클리오네 NPC '바다천사'들 그래픽

기존의 게임 패턴에 질릴만한 타이밍이기 때문에, 새로운 플레이를 보여 주고자 고민하던 중, 해파리의 몸체에 의해서 튕겨 나가면 어떨까, 하고 전구의 도시를 구성하였다.

다양한 해파리 중에 빛이 나는 해파리, 투명한 해파리가 주로 등장하며, 평범한 해파리들에게도 게임적인 요소들을 주어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해파리만의 등장은 심심하기 때문에 슬슬 등장할 시기가 된, 심해의 아이콘 초롱 아귀와 투명함과 어두움 사이를 오가는 유리오징어도 함께 등장한다.

전구도시 몬스터 스케치 (연필)

신화의 도시 (수심 600m)

신화의 도시

신화의 도시는 600~200m 깊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지역이다. 식물이 등장함과 동시에 푸른색으로 물 빛깔도 바뀌었다. 한국풍이 짙은 곳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족자나 검술 수련장 등, 옛날의 한국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오브젝트들로 배경을 채웠다.

플레이어에게 이제 다 왔음을 알리기 위해서, 밝은 분위기를 낼 필요가 있었다. 아래의 마을들과 달리 좀 더 밝은 색들을 주로 이용하였고, 색 또한 여러 가지를 이용하였다. 전 단계의 맵에서는 3 가지의 색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이 맵에서는 정말 손이 가는 색은 다 사용했다고 보면 된다. 식물의 등장이 빛의 등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곳곳에 작고 무성한 이끼들로 덮어 두었다.

신화의 도시 스케치 (연필)

신화의 도시는 무사들의 도시이다. 하나의 대사부를 모시고 훈련을 계속해나가는 무사들이 거주하는 곳. 그러나 이렇게 된 데에는 큰 이유가 있다. 신화의 도시는 전구 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천사투구들에게 잡아먹히는 입장으로 언제나 침략, 납치, 범죄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를 위해 늘 훈련을 받고 있다.

이 마을의 원경에는 대왕조개님이라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신화의 도시 투구들이 잃은, 대사부를 기리기 위한 동상이다. NPC들과 대화하다 보면 대사부에 대한 그리움과 전구 도시에 대한 원망을 얼핏 들을 수 있다. 대왕조개 모양을 한 집은 대사부(대왕조개님)의 껍데기로 만들어졌다. 그 안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서 대사부와 작은사부(이 마을의 마지막 퀘스트 담당 NPC)의 관계를 보인다.

대왕오징어

신화의 도시가 ‘신화’의 도시인 이유는, 대왕오징어의 등장이 크다. 대왕오징어는 전설과 같은 존재로, 현실 세상에서도 살아있는 개체에 대한 연구가 크게 이뤄지지 않았다. 대왕오징어라는 거대한 몬스터의 비중을 그만큼 키우고 싶었다. 옛 그리스 신화의 크라켄이 대왕오징어에서 나왔다고 하니, 이 얼마나 멋진 마을 이름과 등장 캐릭터인가!

신화의 도시 몬스터 스케치 (연필)

푸른 마을 (수심 200m)

푸른 마을

푸른 마을은 엔딩 씬으로 넘어가기 전의 마지막 맵이며, 엔딩 컨텐츠인 랭킹모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위에 해가 떠있는 것처럼 밝게 묘사하는 것이 목표였다. 가장 다채로웠기 떄문에 즐거운 작업물이었다.

푸른 마을 NPC '갯민숭투구'

다양함에 초점을 두었으며, 각 NPC들은 심해에서 올라온 주인공을 신기해하고 대견해한다. 각종 질문을 퍼부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캐릭터도 있으며, 아래서 올라온 캐릭터이기 때문에 아래 소식을 궁금해하는 캐릭터도 있다. 플레이어에게 “엔딩에 다와갑니다”-라는 메세지를 대사로 전달하기 위해 힘썼다.

투구를 만들면서 한 고민들은 적어도 이렇게 길 만큼,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가장 우선 순위로 고민한 것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효과적으로 보여줄지 였다. 정말 즐거운 작업이었으며, 밤을 몇 번을 새더라도 졸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재밌었다. 또 이렇게 즐거운 프로젝트를 즐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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